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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20주년’ 포항대도교회, 이웃사랑 나눔 펼쳐올해 창립 120주년을 맞은 포항대도교회(담임목사:임정수)가 예수사랑을 이웃에 전하는 일에 나섰다. 포항대도교회는 ‘이웃사랑 나눔’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4월 17일에 실로암안과병원장 김선태 목사를 초청, 수요저녁예배를 드렸다. 이 자리에서 포항대도교회는 실로암안과병원에 시각장애인 개안수술 등을 위한 발전기금 300만 원을 전달했다. 임정수 목사의 인도로 드려진 예배에서 김선태 목사는 ‘예수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김 목사는 “인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성도가 축복을 받는 길”이라며 “이를 위해 낮은 곳에서 섬김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포항대도교회는 5월 2일 장로회신학대학교와 5월 23일 영남신학대학교에 각각 300만 원의 이웃사랑 나눔 기부금을 잇따라 전달할 예정이다. 임정수 담임목사는 “올해 120주년을 맞아 포항대도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성도들의 사랑과 정성을 모은 성금이 아름다운 곳에 사용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포항대도교회는 소외계층 지원과 장학금전달 등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과 봉사에 앞장서고 있으며, 지난 2014년 11월 임정수 목사가 15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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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월광 이규호 목사(증경총회장) 1주기 추모예식 열려경주구정교회(담임목사:장인대) 원로목사인 고(故) 월광 이규호 목사(예장통합 증경총회장) 1주기를 맞아 지난 4월 12일(금) 구정교회 본당에서는 추모예식이 열렸다. 이날 추모예식에는 증경총회장 세 분이 참석하여 이규호 목사를 추모했는데, 정영택 목사는 ‘내 나그네 길’이란 제목의 설교 말씀을, 손달익 목사는 고인의 생전모습을 회상하는 추모사를, 박위근 목사는 축도를 각각 담당했다. 故 이규호 목사는 1975년 10월 19일 경주구정교회에 부임하여 2004년 6월 10일 원로목사로 추대되기까지 약 29년간 구정교회를 시무하면서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기독교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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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이다.천 석 길 목사 구미남교회 저희 부모님은 말씀 중에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묻는 것은 절대로 부끄러움이 아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를 아는 정도라면 이미 알고자 하는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묻고 답하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 사람의 능력이다”라고 자주 훈계하셨습니다. 돌이켜보니 정말 인생의 큰 진리였습니다. 필자가 신학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당시에 많은 분들이 존경했던 울산교회의 박두욱 목사님을 찾아가서 2박 3일 동안 목사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허락을 받아낸 후에는 ‘목사님은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어떻게 전화를 받으시는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를 새벽부터 주무실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 후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때 그 시간을 종종 떠올리며, ‘박 목사님이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해 보곤합니다. 2000년도에 제가 구미남교회에 부임하고 2년이 지날 즈음에 가정교회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저는 단숨에 미국 휴스턴에 세미나를 다녀왔고 그 이듬해에 연수까지 다녀왔습니다. 그리고는 가정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가정교회의 정신은 놀라웠습니다. 저는 더 알고 싶어서 안식년 때에 최 목사님께 간절하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희 부부와 함께 여행을 같이 가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주간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흔적을 순례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책에서 읽을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를 목사님께 질문하면서 답을 듣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무엇을 물으며, 누구에게 묻느냐?’가 그 사람의 크기와 비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묻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며, 묻고 싶은 마음은 이미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기에, 저는 묻는 것이 결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질문이 없는 사람에게는 설령 답이 주어져도 그 사람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이 궁금한지, 누구에게 질문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지 싶습니다. 끝없이 질문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를 가지셔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아, 참, 가장 분명한 해답은 성경에 이미 나와 있다는 것쯤은 알고 계시지요? 그러니까 물어보셔야 합니다. 성경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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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선교를 통한 안동지역의 복음화(1)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1. 한국에 세워진 초기 선교병원 2. 안동성소병원의 9개 변곡점 3. 안동성소병원의 시작 4. 안동성소병원의 이름 5. 초기 안동성소병원의 위치 ............................................. 12. 애린진료원 13. 안동성소병원의 재건축 14. 1960년대~1980년대 안동성소병원 들어가면서 안동시에는 1909년도에 설립된 세 개의 중요한 기관이 있다. 세 개 기관 모두 문을 닫지 않고 오늘에도 존재한다. 우선 안동초등학교는 1909년 5월 9일 사립영가학교와 동명학교를 병합하여 사립안동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 시청자리에서 개교했다. 1911년 3월 31일, 공립보통학교가 된 후 1928년 12월 20일, 현재 위치인 남문동 189번지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 번째는 1909년 8월 8일 8명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설립된 안동교회이다. 세 차례 교회 위치를 변경한 끝에 1914년 초 오늘의 위치, 화성동 151번지로 이전한 후 109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기관은 안동성소병원이다. 안동성소병원은 1909년 10월 1일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선교사 별리추(鱉離湫, 플레처)가 안동선교부에 부임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그는 성소병원의 초대원장이다. 당시 선교사 임시사택이었던 현재 안동교회 경내에서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다가 1914년 현재 지번인 금곡동 177번지로 이전하여 109년 동안 한 자리에서 영육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병원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성소병원의 구관 1층 응급실로 들어가는 출입문 위에는 “하나님은 치료하시고 우리는 봉사한다(God cures, We care.)”라는 문구가 있다. 원훈(院訓)과도 같은 것이다. 이 문장은 직원들이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이 치료하지 않으시면 환자는 회복될 수 없다는 의미로 하나님이 치료자(여호와 라파)되심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1. 한국에 세워진 초기 선교병원 우리나라 근대 병원 설립의 촉매제가 된 것은 1885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개신교 선교사의 인천항 입국으로 시작된 한국선교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일명 선교병원들은 일정 지역을 대상으로 선교부(Station)로 지정한 후 주민들에게 진료사업을 시행하다가 점차적으로 병원으로 발전했다. 성소병원 역시 동일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동성소병원의 정관의 제1장 총칙 제1조(목적)는 “본 법인은 의료법에 입각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토대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며 육신의 고통을 제거하며 국민보건을 향상하는 의료사업으로써 복음을 전파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안동성소병원은 처음부터 영혼과 육신을 구원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들은 처음에는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역에 가옥을 구입하여 진료소로 개조하여 시작했다. 안동성소병원도 이 원칙을 그대로 따라 선교사 임시사택과 안동읍 최초의 교회인 안동교회 가까이에 있는 가옥을 구입하여 진료소로 바꿔 환자들을 치료하거나 교회 마당에 큰 텐트를 치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1909년 경북 안동에 선교병원이 시작하여, 1914년 코넬리우스 기념병원이 세워졌고, 후에 안동성소병원으로 개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진료의사로는 별리추 선교사, 심의도(沈義道, 스미스) 선교사와 백두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백두성은 백태성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백태성은 비록 안동성소병원의 부원장이었지만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성소병원 원장의 직무를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만행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1943년 선교사들을 강제로 추방시키고 전국에 있는 기독교 학교와 병원을 폐쇄시키기 시작했다. 이 방침에 따라 안동성소병원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안동교회 담임인 김광현 목사가 백태성에게 안동교회 안에 있는 건물을 병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안을 했고, 백태성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백병원 간판으로 안동 최초의 외과병원을 개업하게 되었다. 백태성이 개업한 백병원은 성황을 이루다가 현재 광석동 농협에서 신시장 쪽 인접한 곳으로 이전했다. 2. 안동성소병원의 9개 변곡점 선교병원인 안동성소병원은 한국유교, 불교, 무교의 심장과도 같은 땅인 안동에서 114년 전에 출범했다. 지난 114년의 역사를 통해 안동성소병원은 크게 9개의 변곡점을 통해 부침(浮沈)을 경험했다. 첫째, 1909년 10월 1일은 앞서 언급한 대로 안동성소병원이 시작한 날이다. 둘째, 1914년 첫 병원건물의 신축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에서 최초로 3층 붉은 벽돌의 병원건물이 준공되었다. 셋째, 1927년 의성에 분원(分院)을 설립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넷째, 1950년에 발발(勃發)한 한국동란으로 성소병원 건물이 전파됨으로써 지역 주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다섯째, 1953년 금곡동에 위치한 경안신학원 입구에 애린진료원이란 이름으로 성소병원이 재탄생한 것이다. 여섯째, 현 병원 위치에 2층으로 병원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함으로써 다시 병원의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일곱째, 1968년 경안노회가 미국선교회로부터 성소병원의 재산권과 경영권을 인수하여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여덟째, 1981년 6월 25일 성소병원은 새롭게 건물을 증축하고 정부로부터 종합병원 인가를 받고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아홉째, 1994년 서울명성교회가 성소병원의 재산과 경영권을 인수하여 건물을 신축하고 의료기자재를 도입하는 등 새롭게 발돋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 소고(小考)에서는 안동성소병원의 시작부터 1980년대 말까지의 역사를 다룰 것이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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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안동교회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7·끝)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1943년~1952년 (2) 김광현 목사는 부임한 이후 내실을 기하기 위해 먼저 은혜로운 예배를 구상하면서 예배의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순서도 순서지만, 그 순서가 모두 성령과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하고, 거기 진정이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목사는 예배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주악→개회선언→강령기원→찬송→교독→기도나 주기도문, 혹은 사도신경(성가대의 아멘 찬양)→성경→찬양→설교와 기도→찬송→헌금→(광고)→찬송→축도→송영. 특별한 것은 봉헌순서가 설교 후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봉헌을 예배 순서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교 후인 예배가 끝나는 시간에 편의상 배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 목사는 각 예배 순서가 갖는 의미를 그의 자서전 『이풍랑인연하여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바 있다. ① 처음 주악은 성별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되도록 조용한 기도곡으로 예배 분위기 조성에 역점을 두었다. ② 개회선언은 예배에의 부름이므로 그러한 의미가 있는 성구를 낭독했다. ③ 강령기원은 성령강림을 비는 기도인 만큼 기도로도 하고, 성가대에서 거기 해당하는 찬송을 부르게도 했다. ④ 찬송은 대체로 성호를 찬양하는 찬송을 부르게 했다. ⑤ 교독은 그날의 설교와 관련해서 선정하되 교독문을 이용했다. 그리고 한달에 한 번은 십계명을 교독하되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까 주문만을 낭독하고, 일반이 각 계명마다 ‘아멘’으로 응답하도록 했다. 나는 이 방식을 신명기 27장에서 배웠다. ⑥ 그다음 기도는 흔히 목회기도라고 하여 목사가 하는데, 나는 종전대로 장로들에게 순번대로 돌려 가며 하게 했다. 장로에게 할 일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만인제사 정신이 그 이유였다. 시간이 너무 길지 않게 할 것과, 교회를 대표하여 감사와 회개와 간구를 하게 했다. ⑦ 그리고 그날 설교의 본문이 될 성경을 낭독하고, ⑧ 성가대가 특별히 준비한 찬양이 있은 후에, ⑨ 설교를 했다. 그리고 설교자가 기도를 드리고 나면, ⑩ 다 같이 그날 설교 뜻에 따른 찬송을 부른다. 그때 앞에서 기록한 대로 남녀 집사 두 사람이 보자기에 엎인 헌금서랍을 들고, 찬송에 맞추어서 들어온다. ⑪ 목사가 기도하고, 집사들이 헌금서랍을 성찬상 위에 경건히 바친다. 이때 교회에 알릴 말을 한다. 이것은 예배 순서일 수 없으나, 편의상 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주보에 있으므로 요지만 간단히 했다. ⑫ 송영하는 찬송을 부르고, ⑬ 축도를 했다. 축도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에 준해서 했다. 설교 메시지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성도들에게 성삼위 은혜가 함께 하기를 빌었다. ⑭ 그리고 송영으로 예배를 모두 마쳤다. 결론 본 소고는 1909년부터 1950년대 초까지 약 50년 동안 1909년 8월 둘째 주일 설립된 안동읍 최초의 교회인 안동교회 예배의 형식, 내용과 순서를 검토했다. 주일오전예배, 주일오후예배, 외국인영어예배, 또한 새벽기도회의 시간과 장소는 오월번 선교사의 부인 새디 선교사와 안동주재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와 편지등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지만 예배 순서와 내용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김광현 목사가 제7대 담임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자료들을 검토하여 제(諸) 예배 순서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1910년대 안동교회의 주일오전예배 시간을 10시 30분, 그리고 오후예배는 2시 30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예배 순서는 마포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찬송→기도→성서봉독→회중의 기도→찬송→성서 교훈→기도→봉헌→찬송 순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예배시간은 정확하지 않지만 수요예배와 새벽기도회도 존재했다. 1920년대 예배는 곽안련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규범』(1922년)이 예배에 영향을 주었다. 주일오전예배 순서는 1910년대의 예배순서를 거의 그대로 유지했지만 곽안련 선교사가 제안한 축복기도가 마지막 순서로 포함되었다. 주일오후예배와 수요예배 역시 1910년대와 큰 차이는 없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안동교회 주일 오전예배의 경우 비예전적 형식을 탈피하고 본래 장로교회의 예배형식을 회복했을 것이다. 다음은 1930년대 안동교회 주일오전예배순서는 다음과 같다:주악(성가대)→찬송→기도→성경→찬양(성가대)→설교→찬송→헌금→광고→축복→송영(성가대). 1943년 1월 김광현 목사가 7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안동교회 예배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주악→개회선언→강령기원→찬송→교독→기도나 주기도문, 혹은 사도신경(성가대의 아멘찬양)→성경→찬양→설교와 기도→찬송→헌금→(광고)→찬송→축도→송영. 안동지역 선교 초기 예배의 형식과 내용, 시간 등은 늘 제 머릿속에 맴돌 던 주제였다. 하지만 막상 자료를 찾고 발굴하면서 특히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약 30년 동안의 예배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음에 절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1909년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안동교회의 초기 예배, 주일예배, 주일오후예배, 특별예배, 삼일기도회, 새벽기도회 등의 형식, 시간, 내용 등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작은 부스러기 같은 과거의 흔적들을 찾고, 그것으로 당시의 예배를 재구성하면서 과거 없는 현재는 결코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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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경서노회 ‘전도 컨퍼런스’ 개최예장통합 경서노회(노회장 조민상 목사)가 2024년에는 노회 산하 177개 교회들이 크게 부흥되기를 소망하며 대대적인 전도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경서노회는 지난 12월 14일 오전 10시부터 구미시민교회(위임목사 조민상) 예배당에서 ‘전도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발대식을 가졌다. 이날 컨퍼런스는 목회자와 장로, 권사, 전도대원들을 대상으로 열렸으며, 900여명의 성도들이 참석해 전도를 향한 열정을 보였다. 경서노회장 조민상 목사는 지난 10월에 노회장으로 취임할 때부터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목사는 “2024년에는 경서노회 교회들이 배가 되었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노회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전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전도부흥운동에 동참할 것을 독려해왔다. 이번 전도 컨퍼런스 특강 강사로는 괴산중부교회 이요한 목사가 초빙되었다. 괴산중부교회는 이요한 목사가 처음 부임할 당시에는 1명의 성도가 있었는데, 그동안 거리(노방)전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전도를 시행한 결과 지금은 100명 이상의 성도가 출석하는 부흥을 이룬 교회로 알려져 있다. 이 목사는 특강에서 “전도는 늘 다가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면서 “전도가 쉽지는 않았지만, 전도를 한 번도 쉬었던 적은 없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기에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꾸준히 하는 교회에 사람을 보내주신다”고 강조했다. 오후 시간에는 파트별 사례발표 시간을 가졌다. 발표는 6개 영역으로 나누어 △도농교회:최한우 목사(김천대광) △다음세대:조윤호 목사(구미영락) △도시자립대상교회:서대영 목사(구미선한목자) △농촌자립교회:이은성 목사(문경동성) △농촌자립대상교회:명덕용 목사(상주무릉) △도시자립교회:권혁진 목사(김천봉곡)가 진행했다. 이어 전도부흥운동 발대식을 한 후 모든 순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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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좌교회 “아름다운 영적 리더십 계승”김천 지좌교회에서는 지난 12월 10일(주일) 오후 3시 내빈과 축하객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곽종복 원로목사 추대식 및 장철한 담임목사 취임식, 김종규 안수집사 은퇴식을 가졌다. 곽종복 목사는 1991년 10월 지좌교회에 부임한 이후 올해 11월까지 32년간 최선을 다해 목양을 감당하고 은퇴했다. 곽종복 목사의 뒤를 이어 지좌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한 장철한 목사는 “좋은 교회, 행복한 교회로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원로목사님의 눈물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교회를 잘 섬기도록 하겠다”고 인사했다. 1부 예배는 경서노회장 조민상 목사의 인도로 드렸으며, 전 노회장 장승현 목사가 “복음을 위해, 진리를 위해 흔들리지 않고 기대와 소망을 갖기를 바라며, 지좌교회가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날로 번성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원로목사 추대식과 담임목사 취임식, 김종규 안수집사 은퇴식이 진행됐다. 축사와 권면 및 기도는 경서노회 전노회장 김영춘 목사, 곽희주 목사, 장영운 목사, 곽금배 목사, 이현세 목사, 정영화 목사, 신덕호 목사, 김석규 목사가 순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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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부곡교회 취약계층에 사랑의 연탄 전달김천시 부곡동에 위치한 김천부곡교회(담임목사 강신근)는 지난 2일 다음세대(교회학교)와 함께 김천시 독거노인과 저소득층, 취약계층의 어르신들에게 사랑의 연탄 1,000장을 직접 전달했다고 밝혔다. 1년전 김천부곡교회로 부임한 강신근 목사는 다음세대 부흥을 위해 봉사와 섬김운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매년 겨울철 사랑의 연탄운동을 계획하고 2024년에는 김천시 청년연합회와 공동주최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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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안동교회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6)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6대) 시대의 예배: 1925년~1942년 (2) 3) 주일저녁예배 1935년 1월 13일(주일) 오후 7시에 있었던 평양 장대현교회의 주일 저녁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주악→찬송→기도→찬송→성경→광고→찬양→설교→기도→찬송→축복→송영. 저녁 7시에 예배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찬양 예배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저녁 시간과 오후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주일 저녁 예배 혹은 찬양 예배로 명명한 것 같다. 또한 1938년 4월 3일(주일) 평양 산정현교회는 주일 저녁 예배를 음악 헌신예배로 드렸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묵도→찬송→기도→성경랑독→특별찬송→회원점명→찬양→헌금→독창→설교→찬송→축도→송영. 1930년대 평양의 장로교회는 주일 오후 예배가 아니라 저녁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예배를 시작할 때 주악 혹은 묵도와 찬양대의 찬양, 그리고 축도와 송영으로 예배를 마쳤다. 특히 주일 저녁 예배가 헌신예배를 드릴 경우 봉헌순서가 있었다. 안동교회 역시 주일 저녁 예배 시에 특별한 순서가 포함된 적이 있다. 1930년 5월 9일(토)에 있었던 안동교회 당회는 다음날 주일 저녁 예배 시 청년면려회가 금주 강연을 위해 예배당 사용을 청원했을 때 사용을 허락했다. 이 당회록으로 볼 때 우선 예배시간이 오후에서 저녁으로 변경되었고, 주일 저녁 예배 시 강연 등 특별한 순서가 예배에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안동교회의 주일 오후 예배 시간이 저녁으로 언제 변경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당시 대부분의 장로교회들이 저녁 시간에 예배를 드린 것으로 보아 안동교회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오후 예배에서 저녁 예배로 시간을 변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4) 삼일기도회 1929년 2월 5일 당회록에 따르면 수요예배를 언급하고 있다. 안동교회는 여전히 삼일기도회가 아닌 수요예배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1935년 평양 장대현교회는 삼일기도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935년 1월 16일(수) 하오 7시에 있었던 평양 장대현교회의 삼일기도회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주악→찬송→기도→성경→광고→기도→설교→기도→찬송→주기도. 삼일기도회도 주악으로 시작했으며, 주님의 기도로 마쳤다. 삼일기도회는 예배라기보다는 기도회로 생각했기 때문에 축도가 아니라 주기도로 마쳤고, 이 전통은 많은 교회에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 1930년대 삼일기도회는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수요 저녁 예배나 삼일기도회 순서와 거의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1943년~1952년 (1) 1930년대 말부터 시작한 일제의 신사참배는 예배의 자유를 억압했다. 이러한 억압적인 분위기 가운데 1943년 1월 안동교회 7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광현 목사는 예배당과 예배 순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 목사는 1979년까지 시무했지만 이 소고(小考)에서는 안동교회의 공식적인 주보가 나오기 전인 1952년까지 예배를 다룰 것이다. 의성이 고향인 김광현 목사는 미국 북장로교가 세운 교회와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떠난 적이 없다. 그는 평양신학교가 신사참배문제로 폐교되기 직전인 1938년 9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고베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했다. 평양신학교 교장인 라부열(Stacy L. Roberts) 선교사의 추천으로 입학한 고베신학교는 고베 중앙신학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미 북장로교가 설립한 5년제 신학교로 교리, 신학 내용 등에서 평양신학교와 거의 흡사했다. 이것은 김 목사가 귀국하여 무리 없이 장로교회를 섬길 수 있게 했다. 김광현 목사가 처음 안동교회에 부임했을 때 예배실의 강단은 다른 교회와 같이 2단으로 되어 있었다고 기억한다. 설교하는데 편리하고 효과적이게 하기 위하여 강대를 예배실 어디서나 잘 볼 수 있도록 예배석보다 조금 높은 앞자리에 두었던 것이다. 김 목사는 이것을 오랜 이교적 인습 탓으로 생각하고, 예배실로는 어딘지 허전함이 느껴졌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김 목사는 강대 구조를 변경했는데, 설교대와 인도대를 구별하여 강단 좌우로 나누어 배치했다. 설교대와 인도대를 분리하여 말씀을 전하는 곳과 인도자석을 구별하고, 또 강단 뒤편 중앙에 성찬상을 둠으로써 높은 자리에 앉은 예배위원들이 일반 예배자들과 대화하여 앉는 황송함이 많이 상쇄될 수 있었다고 김 목사는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교회에 나온 한 할머니가 강대 앞으로 가더니 강대상을 향하여 합장하고 자꾸 절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예배실에 제단을 높인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현재의 구조인 삼단 구조로 하여, 본래 있던 강단 앞으로 그 높이 절반이 되는 중간 강단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김 목사는 자서전에서 밝혔다. 위 강단은 주로 주일 오전 예배와 특별집회 때 사용하고, 저녁 예배나 예배 이외의 집회는 아래 강단으로 사용했다. 이유는 안동교회가 말씀을 강조하는 교회였기 때문이었다. 설교대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 때나, 인간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 시에 함께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지만 별 대안이 없어 오늘날에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 강단에 성찬상을 두어 설교용으로도 겸용하였고, 그 앞바닥에 세례대를 두어 설교상과 성찬상과 세례대가 일렬로 배치했다. 또한 어딘지 사제의식에서 발상 같고 만인제사를 표방하는 입장에서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김 목사는 예배시간에 목사가 가운을 입지 않았지만, 옷차림에 빈부의 차가 없고 좀 더 경건해 보이기 때문에 성가대나 헌금위원들은 가운을 입게 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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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영락교회 ‘서정운 목사 위임 및 장로 임직식’ 거행예장통합 경서노회 산하 김천영락교회(담임:서정운 목사)는 11월 5일(주일) 오후 3시 30분 본 교회당에서 서정운 목사 위임 및 장로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올해로 창립 34주년을 맞은 김천영락교회는 지난 2021년 12월에 제4대 담임목사로 서정운 목사가 부임해 새로운 도약과 부흥을 꿈꾸고 있는 교회이다. 이날 1부 예배는 경서노회장 조민상 목사의 사회로 부노회장 이상균 목사의 기도, 김천동시찰장 김호진 목사의 성경봉독, 할렐루야 찬양대의 찬양 후 익산영락교회 배만수 목사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배만수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함이다”면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하시길, 충성된 자요 칭찬받는 종들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부 목사 위임식은 위임국장 조민상 목사의 집례로 진행됐으며, 서정운 목사는 “김천영락교회의 담임목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과 교우들을 사랑하며 교회 성장과 부흥을 위해 노력할 것”을 하나님과 교우들 앞에서 서약했다. 이날 위임받은 서정운 목사는 “김천영락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과 교우님들께 감사드린다”면서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교회로 세워갈 수 있도록 열심히 성도님들을 섬겨가도록 하겠다”고 인사했다. 권면과 축사 시간에는 전노회장 문병식 목사가 위임목사에게 권면을, 전노회장 곽금배 목사가 교우들에게 권면했으며, 안양제일교회 최원준 목사는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서 3부 장로 임직식이 당회장 서정운 목사의 집례로 진행됐다. 당회서기 이이근 장로가 임직자인 이석길 차권우 김영진 장로를 소개했으며, 서약, 안수기도, 악수례, 선포 등의 순서가 이어졌다. 임직자들은 “김천영락교회 장로의 직분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본직을 힘써 봉사할 것”을 서약했다. 임직자들을 위한 축하 메시지는 전노회장 이현세 목사가 전했으며, 축하 연주, 기념패 및 기념품 전달의 시간도 가졌다. 임직자 대표로 이석길 장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면서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기고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목사님을 도와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일에 헌신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인사했다. 이후 전노회장 김영춘 목사의 축도로 감사예배와 모든 예식 순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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